좋아질 때와 나빠질 때

잘 되면 제 덕이 아니고, 안 되면 제 탓 같습니다.

치료가 잘 될 때가 있습니다. 영상에서 종양이 눈에 띄게 줄어 있거나, 몇 년째 안 잡히던 수치가 정상으로 내려와 있거나, 복수가 빠져서 배가 편해졌다고 하실 때. 그런 날은 진료실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환자분이 웃으시고, 보호자분이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시고,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공은 제 것 같지가 않습니다. 약이 잘 들은 것이고, 병이 그렇게 생긴 것이고, 그분이 약을 거르지 않고 드신 것이지, 제가 특별히 잘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거든요. "선생님 덕분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늘 조금 민망합니다.

반대쪽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안 될 때는 이상하리만치 제 탓 같습니다. 그때 검사를 한 달 당겼으면 달랐을까. 그 말을 조금 더 세게 했으면 들으셨을까. 다른 선택지를 더 밀어붙였어야 했나. 지나고 나서 복기해 보면 대개는 그때 그 판단이 그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는데도, 결과가 나쁘면 그 사실이 별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가장 오래 남는 건 병이 나빠진 경우보다, 끝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경우입니다.

알코올 간경변으로 오시는 분들께는 결국 같은 말을 드리게 됩니다. 술을 끊으셔야 한다고. 약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가 아니라, 끊는 것보다 효과가 큰 치료가 없어서입니다. 그 말을 저는 여러 번 합니다. 처음에는 설명하듯, 다음에는 설득하듯, 나중에는 거의 사정하듯 합니다. 검사 수치를 보여 드리고, 남은 간 기능을 숫자로 짚어 드리고, 이대로 가면 어떻게 되는지도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사람의 행동은 정보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저는 매번 정보를 더 드리는 쪽으로 갑니다. 제가 가진 도구가 그것뿐이라서요. 그러다 몇 달 뒤 응급실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 드는 감정은 화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그냥 맥이 풀리는 느낌입니다. 내가 한 말이 전부 허공에 있었구나 하는.

이런 날 스스로에게 하는 말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분의 인생을 내가 대신 살 수 없다는 것. 술을 끊는 일이 의지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 나는 의사이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책임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다 맞는 말인데, 진료실에서 나올 때는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그래도 다음 외래에서 저는 또 같은 말을 할 겁니다. 이번에도 바로 달라지지는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그 말이 통하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아주 가끔 때문에 계속 말하게 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생각이며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