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가벼운 병에는 시간을 못 쓰고, 중한 병에는 쓰려고 합니다. 그 사이에서 늘 저울질을 합니다.
외래를 시작하기 전에 그날 오실 분들의 이름을 쭉 훑어봅니다. 그때 이미 머릿속에서 시간 배분이 시작됩니다. 이분은 수치가 안정적이니 짧게, 이분은 지난번 영상이 애매했으니 길게. 진료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저는 이미 누군가의 몫을 줄이기로 정해 놓은 셈입니다.
이걸 소리 내어 말한 적은 별로 없습니다. 좋게 들릴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인원을 봐야 하는 구조에서는 누구를 길게 보겠다는 결정이 곧 누구를 짧게 보겠다는 결정이 됩니다. 총량이 정해져 있으니 한쪽을 늘리면 반드시 다른 쪽이 줄어듭니다. 저는 대체로 중한 쪽으로 시간을 밀어 놓습니다.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짧게 본 그분에게도 그 병이 가볍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지방간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분에게 그건 인생에서 처음 듣는 간 질환입니다. 검색을 하다 무서운 글을 읽고, 잠을 설치고, 반차를 쓰고, 어쩌면 지방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오셨을 겁니다. 그렇게 도착해서 듣는 말이 "수치는 괜찮으시고요, 6개월 뒤에 뵐게요"라면, 그 몇 마디를 위해 그 모든 걸 했나 싶으실 겁니다. 저는 그 표정을 압니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뒤를 한 번 돌아보시는 그 얼굴을요.
더 마음에 걸리는 건, 그분이 화를 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은 그냥 "아 네, 감사합니다" 하고 일어나십니다. 바쁜 걸 아시니까요. 그 배려를 제가 매번 받아 씁니다.
그래서 저는 진료실 밖으로 설명을 옮기는 방법을 계속 찾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도 그중 하나입니다. 3분 안에 다 못 할 말을 미리 적어 두면, 적어도 궁금한 채로 돌아가시는 일은 줄겠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건 여기 적어 두었으니 집에 가서 천천히 읽어 보세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예전보다는 덜 미안합니다.
보호자분들께도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짧게 끝난 진료가 무성의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오래 붙잡고 설명드린 날은 그만큼 상황이 간단하지 않다는 뜻일 때가 많습니다. 진료 시간의 길이로 병의 무게를 짐작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 짐작이 늘 맞지는 않습니다. 짧게 끝났다면 대개는 다행인 쪽입니다.
물론 이건 제 쪽의 사정이고, 설명이지 변명이 아니라고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구조가 이러니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넘어가기에는, 그 3분이 누군가에게는 한 달을 기다린 3분입니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당분간은 이렇게 밖에다 적어 두는 것으로 대신하려고 합니다.